‘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아마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 꼭 만나야 할 분이 있습니다. 마주 앉아 30분만 얘기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좋은 변화를 기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지요.
김신범 부소장님은 오랫동안 노동현장과 환경 분야에서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활동해왔습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환경부와 공동으로 시민과 노동자의 화학안전 정책을 위한 토론장 ‘화학안전정책포럼’을 열도록 제안하고 시민사회가 정책역량을 다질 수 있도록 다양한 일들을 디자인하고 연결하고 있습니다. 현재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하게 사회를 위해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소통하는 화학안전정책 연구플랫폼 ‘화학안전정책연구.kr’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하하하 웃음이 매력적인 김신범 부소장과 시민이 함께 나눈 이야기 들어 보실래요?
🔖 ‘직업인으로서의 김신범’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연구소 부소장이시니 당연히 연구자 같은데 그동안 해 온 일들을 보면 노동운동가나 환경운동가인가 싶기도 해요.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가장 힘든 순간이네요. 제가 평생 잘 안 되는 게 직업으로 제 일을 설명하는 거예요(웃음). 이 일을 하면서 ‘연구자와 활동가가 섞여 있습니다.’ 정도로 표현합니다.
🔖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설립된 1999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조금 진부한 질문입니다만, 이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 질문은 평소에도 많이 받아서 자신 있게 얘기하는데요. 오라는 데가 없어요. 하하하! 제가 지금은 꽤 괜찮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구소에 들어와서 10년 동안 ‘너는 연구소 아니면 갈 데가 없을 것 같아.’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연구소는 저를 만든 공간 같아요. 저에게 주는 혜택이 너무 커요. 예전에는 화학물질로 문제가 생기면 어디든 다녀야 된다는 게 힘들었는데 그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누군가가 이 자리에 와서 저처럼 10년 넘게 여러 경험들을 하다 보면 ‘이제는 이걸 해야 겠구나’ 깨닫는 순간이 올 겁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이 공간을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국가의 제도미비가 고의적인 원인인지 국가역량 부족에 의한 한계인지 구분하는 진단과정을 중시한다.
화학물질 문제가 인류사적으로 최근에 발생한 문제라는 점에서 국민 이해당사자가 국가역량부족과 시스템 결핍을 직면하게 되는 상황은 의외로 많이 발생한다.”
-노동건강연구소 미래비전계획서 중에서
🔖 지난해 한 포럼에서 ‘전염병 관리와 화학물질 관리에는 국가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국가시스템의 상황과 수준에 대한 객관적 진단이 필요하다’는 발제가 인상적이었어요. 화학물질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량 부족과 시스템의 부재를 인정하면 문제의 인식과 해결도 달라진다는 의미로 다가 왔어요.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15년 동안은 저도 욕하고 싸웠죠.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요. 그랬더니 안 보이던 게 보이는 거예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새로운 거예요. 기존에 없던 걸 하자고 하면 어느 조직이든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죠. 화학물질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건 정부라는 조직 특성이 아니라 인간 세상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능력이 없다’는 건 화학물질의 역사도 그렇고 우리나라만 능력을 못 갖춘 건 아니니까요. 저도 이런 생각을 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연구소에서 활동하던 초기에 고용노동부가 산업계 요청으로 회의결과를 뒤집고 노동자들 안전보건교육시간 단축을 결정했다는 걸 알고 전화를 걸어서 막 화를 냈던 적이 있어요. 지금은 되게 후회해요. 그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유지하라고만 했던 거죠. 그때 어떻게 하면 교육이 더 좋아질까요? 질문하고 그 방법에 대해 토론했다면 우린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저에게는 그런 순간순간들이 많아요. ‘내가 뭘 했는가’에 대해 반성할 때가 된 거죠.
🔖 그래서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를 진단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해결을 위해 대화하고 대안을 같이 만들어가는 데 힘을 쏟는 거군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몸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을 좋아하죠. ‘우리 뭐 먹을까’ 보다는 ‘이거 먹을래?’라고 얘기하면서 밥을 차릴 줄 아는 사람들을 우리는 높게 평가하잖아요. 제가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차려진 밥상에 와서 이건 맛있고 이건 맛없고를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게 이것밖에 없는데 이걸로 볶음밥 할까? 얘기하는 거죠. 그래야 밥상이 차려지는 거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뭔가 얘기하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게 이야기의 출발점이기도 하죠.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맞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을 좀 더 많이 해야 되는 거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저는 일이 잘 안 되는 시간을 아주 오래 거쳐 왔어요.
실패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뭔가 농축되는 게 생기고 발효되는 것 같아요.
기존에 생각했던 것들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생각해 보고 다시 폐기하는 과정에서 진짜 알맹이가 남는 것 같아요.”
🔖 그동안 아이쿱생협과 바디버든 줄이기 캠페인(2019), 바이오모니터링을 통한 소방공무원 유해물질 노출 수준 평가 연구(2021)를 진행한 경험이 있지만 '시민과 함께하는 바이오모니터링 프로젝트'는 3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간 프로젝트인데요. 연구소의 목표나 김신범 부소장님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우리는 이런 일을 대놓고 해본 적이 없어요. 처음으로 대대적으로 하는 거니까 3년 동안 제대로 실패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무슨 얘기냐 하면 20년 전에도 발암물질이 문제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고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기업은 당연히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고 정부도 좋아하지 않았겠죠. 시민이나 노동조합 속에서도 모두 받아들여진 건 아니었어요.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다만 지금까지 공기나 물, 흙, 실내에 있는 건축 자재들이나 생활용품들에 기준을 만들어서 우리 몸에 화학물질이 들어오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몸은 더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이제는 보여줘야 되겠구나, 그동안의 많은 노력들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연구자나 전문가만 아는 게 아니라 시민들, 노동자들과 진짜 공유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등장하고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건너뛰었던 문제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되겠죠. 그 다음에는 우리도 일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큰 투자예요. 브라이언임팩트재단으로부터 기부를 받아서 투자를 하는데 지금 잘 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빛을 발하는 것도 좋지만 정말 필요한데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에 투자하고 싶어요. 그런 건 20년, 30년 훨씬 더 오래 갈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이 과정에서 어떤 게 더 만들어지면 좋을까, 어떤 경험들을 시민들과 나누면 좋을까 아주 많이 생각하는 사람, 그러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실패들을 잘 정리해서 공유하는 사람, 이게 프로젝트에서 제 역할인 것 같고요.
“환경 피해를 느끼고 문제라고 목소리를 낼 정도면 이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죠.
피해를 당하면서 그냥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들, 희망을 내려놓는 걸로 자기를 정당화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빨리 많이 만나고 빨리 얻어터져야만 나중에 그분들 손을 따뜻하게 잡을 수 있는 날이 오겠죠.”
🔖 이번 프로젝트에는 목적 지향성, 환경정의, 대안 개발, 가족기반, 메시지라는 다섯 가지 설계 원칙이 있어요. 특히 ‘환경정의’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미국의 환경·보건 운동사를 보면 이 일은 중산층 이상의 운동, 멋지지 않는 운동이 될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건 먹고 사는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다음입니다. 임금 체불이 되고 내일 당장 해고 당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환경에 신경 못 써요. 자기 안전도 신경 안 써요. 그건 사치라고 얘기하거든요. 자기 생명도 사치인 사람들에게 환경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내 몸에 나쁜 물질 좀 더 들어오는 게 뭐가 문제겠어요. 항상 삶의 고난으로부터 조금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손을 잡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고마운 손길이지만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손을 잡아야 될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우리 힘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노력을 하면서 길을 열어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제한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고 살아야 되겠다. 우리가 만나야 될 사람들을 지금 만나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되겠죠. 그걸 어렵게 얘기하면 ‘환경 정의’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웃음).
이런 일을 하는 우리는 되게 약한 존재들이에요. 누군가의 지원이 있어야 하고, 누군가가 ‘나는 이게 문제라고 생각해, 우리 동네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아’라고 문제들을 가져와야 해요. 우리는 그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서 일을 하는 거거든요. 지금은 우리를 따뜻하게 봐주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말 필요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못한 거죠.
제가 실패를 얘기하는 건 어쩌면 우리는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분들의 손을 잡으러 가는 거잖아요. 어느 농촌 지역에서 이런 쓰잘때기 없는 일을 하려고 우리의 바쁜 시간들을 뺏느냐고 호통 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날지도 모르고요. 그래야만 우리가 제대로 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건강에 피해를 입은 것보다 자기가 힘들다는 걸 들어주지 않는 것에 더 큰 속상함을 겪어요.
제가 노동현장에서 하는 일이 누군가가 말도 안 된다고 욕먹었던, 다른 의도가 있기 때문에 얘기하는 불만이라고 한 것들이 진실이라는 걸 드러내주는 거라는 알게 되면서 따뜻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평생 이렇게 살 수 있는 용기의 근원이죠.”
🔖 실패를 걱정하기보다는 바라는 것 같은데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요?
연구소에 들어와서 10년 동안은 노동자들의 문제를 연구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잘하고 있는지 몰라서 두려웠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 같지가 않아 조바심이 많이 났어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입니다.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 노동자들은 저를 경멸하는 눈으로 봤어요. 제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너 같은 놈들 많이 왔다 갔어. 너도 뭐 다를 거 있어? 뭘 측정한다고 잔뜩 달아놓고 무슨 결과가 나왔는지 설명도 안 할 거잖아’ 이런 눈빛이었죠. 실패가 두렵지 않은 건 10년 동안 그 분들이 저를 따뜻하게 보는 순간을, 그렇게 변화되는 과정들을 겪었기 때문이거든요.
한번은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공장에 갔는데 사람들이 특정한 공간에서 일할 때마다 무지개가 보인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웃기지 마세요’라고 얘기하거든요. 저는 ‘그럴 수도 있지, 시각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이 있나 보다’ 정도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에요. 여러 사람들이 보인다면 보이는 거니까요. 똑같은 공간인데 공기가 흘러와도 여기만 그렇진 않을 것 같았지만 한번 확인이라도 해보자 해서 그 자리와 옆 자리를 비교할 수 있게 측정기를 설치해 보니 그 자리가 진짜 높은 거예요. 이해가 안 되게. 현장에 가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져요.
우리는 산업재해 환자들이나 노동 환경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노사 갈등으로 그런 문제들을 제기하는 거라고 공공연하게 수업 시간에 배워 왔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훈련 받아왔죠. 오히려 ‘저게 진짜 문제면 어떡하지, 저 사람들 말이 사실이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라’고 가르쳤어야 해요. 우리 연구소까지 그러면 안 되니까 저는 한 번 더 믿어준다 이런 정도의 차이였겠지만 그 차이가 정말 어마어마했던 것 같아요.
➡ 2편에서 계속됩니다.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집니다. ‘아마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 꼭 만나야 할 분이 있습니다. 마주 앉아 30분만 얘기하다 보면 우리 사회의 좋은 변화를 기대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지요.
김신범 부소장님은 오랫동안 노동현장과 환경 분야에서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활동해왔습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환경부와 공동으로 시민과 노동자의 화학안전 정책을 위한 토론장 ‘화학안전정책포럼’을 열도록 제안하고 시민사회가 정책역량을 다질 수 있도록 다양한 일들을 디자인하고 연결하고 있습니다. 현재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하게 사회를 위해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이 소통하는 화학안전정책 연구플랫폼 ‘화학안전정책연구.kr’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하하하 웃음이 매력적인 김신범 부소장과 시민이 함께 나눈 이야기 들어 보실래요?
🔖 ‘직업인으로서의 김신범’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연구소 부소장이시니 당연히 연구자 같은데 그동안 해 온 일들을 보면 노동운동가나 환경운동가인가 싶기도 해요.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가장 힘든 순간이네요. 제가 평생 잘 안 되는 게 직업으로 제 일을 설명하는 거예요(웃음). 이 일을 하면서 ‘연구자와 활동가가 섞여 있습니다.’ 정도로 표현합니다.
🔖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설립된 1999년부터 지금까지 20년 넘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조금 진부한 질문입니다만, 이렇게 오랫동안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있나요?
이 질문은 평소에도 많이 받아서 자신 있게 얘기하는데요. 오라는 데가 없어요. 하하하! 제가 지금은 꽤 괜찮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구소에 들어와서 10년 동안 ‘너는 연구소 아니면 갈 데가 없을 것 같아.’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연구소는 저를 만든 공간 같아요. 저에게 주는 혜택이 너무 커요. 예전에는 화학물질로 문제가 생기면 어디든 다녀야 된다는 게 힘들었는데 그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누군가가 이 자리에 와서 저처럼 10년 넘게 여러 경험들을 하다 보면 ‘이제는 이걸 해야 겠구나’ 깨닫는 순간이 올 겁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이 공간을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지난해 한 포럼에서 ‘전염병 관리와 화학물질 관리에는 국가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국가시스템의 상황과 수준에 대한 객관적 진단이 필요하다’는 발제가 인상적이었어요. 화학물질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량 부족과 시스템의 부재를 인정하면 문제의 인식과 해결도 달라진다는 의미로 다가 왔어요.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15년 동안은 저도 욕하고 싸웠죠. 그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고요. 그랬더니 안 보이던 게 보이는 거예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새로운 거예요. 기존에 없던 걸 하자고 하면 어느 조직이든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죠. 화학물질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건 정부라는 조직 특성이 아니라 인간 세상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능력이 없다’는 건 화학물질의 역사도 그렇고 우리나라만 능력을 못 갖춘 건 아니니까요. 저도 이런 생각을 하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연구소에서 활동하던 초기에 고용노동부가 산업계 요청으로 회의결과를 뒤집고 노동자들 안전보건교육시간 단축을 결정했다는 걸 알고 전화를 걸어서 막 화를 냈던 적이 있어요. 지금은 되게 후회해요. 그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유지하라고만 했던 거죠. 그때 어떻게 하면 교육이 더 좋아질까요? 질문하고 그 방법에 대해 토론했다면 우린 다른 길로 갈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저에게는 그런 순간순간들이 많아요. ‘내가 뭘 했는가’에 대해 반성할 때가 된 거죠.
🔖 그래서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를 진단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해결을 위해 대화하고 대안을 같이 만들어가는 데 힘을 쏟는 거군요.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몸을 움직일 줄 아는 사람들을 좋아하죠. ‘우리 뭐 먹을까’ 보다는 ‘이거 먹을래?’라고 얘기하면서 밥을 차릴 줄 아는 사람들을 우리는 높게 평가하잖아요. 제가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차려진 밥상에 와서 이건 맛있고 이건 맛없고를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게 이것밖에 없는데 이걸로 볶음밥 할까? 얘기하는 거죠. 그래야 밥상이 차려지는 거라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뭔가 얘기하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하고,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게 이야기의 출발점이기도 하죠.
문제가 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 것도 맞지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얘기를 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을 좀 더 많이 해야 되는 거더라고요.
🔖 그동안 아이쿱생협과 바디버든 줄이기 캠페인(2019), 바이오모니터링을 통한 소방공무원 유해물질 노출 수준 평가 연구(2021)를 진행한 경험이 있지만 '시민과 함께하는 바이오모니터링 프로젝트'는 3년에 걸쳐 진행되는 장기간 프로젝트인데요. 연구소의 목표나 김신범 부소장님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우리는 이런 일을 대놓고 해본 적이 없어요. 처음으로 대대적으로 하는 거니까 3년 동안 제대로 실패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무슨 얘기냐 하면 20년 전에도 발암물질이 문제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고 이런 일들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기업은 당연히 말을 듣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고 정부도 좋아하지 않았겠죠. 시민이나 노동조합 속에서도 모두 받아들여진 건 아니었어요.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다만 지금까지 공기나 물, 흙, 실내에 있는 건축 자재들이나 생활용품들에 기준을 만들어서 우리 몸에 화학물질이 들어오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 몸은 더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이제는 보여줘야 되겠구나, 그동안의 많은 노력들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연구자나 전문가만 아는 게 아니라 시민들, 노동자들과 진짜 공유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분명히 등장하고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건너뛰었던 문제들,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더 분명하게 알게 되겠죠. 그 다음에는 우리도 일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큰 투자예요. 브라이언임팩트재단으로부터 기부를 받아서 투자를 하는데 지금 잘 될 수 있는 아이템으로 빛을 발하는 것도 좋지만 정말 필요한데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에 투자하고 싶어요. 그런 건 20년, 30년 훨씬 더 오래 갈 수 있는 것들이니까요.
이 과정에서 어떤 게 더 만들어지면 좋을까, 어떤 경험들을 시민들과 나누면 좋을까 아주 많이 생각하는 사람, 그러면서 우리가 겪고 있는 실패들을 잘 정리해서 공유하는 사람, 이게 프로젝트에서 제 역할인 것 같고요.
🔖 이번 프로젝트에는 목적 지향성, 환경정의, 대안 개발, 가족기반, 메시지라는 다섯 가지 설계 원칙이 있어요. 특히 ‘환경정의’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다른 나라도 비슷하지만 미국의 환경·보건 운동사를 보면 이 일은 중산층 이상의 운동, 멋지지 않는 운동이 될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기도 해요.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건 먹고 사는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게 된 다음입니다. 임금 체불이 되고 내일 당장 해고 당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환경에 신경 못 써요. 자기 안전도 신경 안 써요. 그건 사치라고 얘기하거든요. 자기 생명도 사치인 사람들에게 환경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내 몸에 나쁜 물질 좀 더 들어오는 게 뭐가 문제겠어요. 항상 삶의 고난으로부터 조금 벗어나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손을 잡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고마운 손길이지만 한편으로 우리에게는 손을 잡아야 될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거든요. 우리 힘으로 되는 건 아니지만 그런 노력을 하면서 길을 열어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이 제한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고 살아야 되겠다. 우리가 만나야 될 사람들을 지금 만나고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되겠죠. 그걸 어렵게 얘기하면 ‘환경 정의’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웃음).
이런 일을 하는 우리는 되게 약한 존재들이에요. 누군가의 지원이 있어야 하고, 누군가가 ‘나는 이게 문제라고 생각해, 우리 동네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 같아’라고 문제들을 가져와야 해요. 우리는 그들을 만나고 그들을 통해서 일을 하는 거거든요. 지금은 우리를 따뜻하게 봐주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정말 필요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지 못한 거죠.
제가 실패를 얘기하는 건 어쩌면 우리는 이 문제가 중요하지 않은 분들의 손을 잡으러 가는 거잖아요. 어느 농촌 지역에서 이런 쓰잘때기 없는 일을 하려고 우리의 바쁜 시간들을 뺏느냐고 호통 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날지도 모르고요. 그래야만 우리가 제대로 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 실패를 걱정하기보다는 바라는 것 같은데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건가요?
연구소에 들어와서 10년 동안은 노동자들의 문제를 연구했어요. 처음에는 제가 잘하고 있는지 몰라서 두려웠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 같지가 않아 조바심이 많이 났어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 덕분입니다.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 노동자들은 저를 경멸하는 눈으로 봤어요. 제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너 같은 놈들 많이 왔다 갔어. 너도 뭐 다를 거 있어? 뭘 측정한다고 잔뜩 달아놓고 무슨 결과가 나왔는지 설명도 안 할 거잖아’ 이런 눈빛이었죠. 실패가 두렵지 않은 건 10년 동안 그 분들이 저를 따뜻하게 보는 순간을, 그렇게 변화되는 과정들을 겪었기 때문이거든요.
한번은 자동차 시트를 만드는 공장에 갔는데 사람들이 특정한 공간에서 일할 때마다 무지개가 보인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웃기지 마세요’라고 얘기하거든요. 저는 ‘그럴 수도 있지, 시각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물질이 있나 보다’ 정도까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에요. 여러 사람들이 보인다면 보이는 거니까요. 똑같은 공간인데 공기가 흘러와도 여기만 그렇진 않을 것 같았지만 한번 확인이라도 해보자 해서 그 자리와 옆 자리를 비교할 수 있게 측정기를 설치해 보니 그 자리가 진짜 높은 거예요. 이해가 안 되게. 현장에 가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져요.
우리는 산업재해 환자들이나 노동 환경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노사 갈등으로 그런 문제들을 제기하는 거라고 공공연하게 수업 시간에 배워 왔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훈련 받아왔죠. 오히려 ‘저게 진짜 문제면 어떡하지, 저 사람들 말이 사실이 아닐까 라는 생각으로 접근하라’고 가르쳤어야 해요. 우리 연구소까지 그러면 안 되니까 저는 한 번 더 믿어준다 이런 정도의 차이였겠지만 그 차이가 정말 어마어마했던 것 같아요.
➡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