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만드는 사람들

‘시민과 함께 하는 바이오모니터링 프로젝트’에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여수 YMCA,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 녹색병원,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등 다양한 협력기관과 시민들이 함께 합니다. 프로젝트를 함께 만드는 연구자, 시민사회 활동가들을 만나 바이오모니터링 설계와 운영, 앞으로의 계획을 듣습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부소장 _ 2편


🔖 이번 프로젝트는 연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잖아요. 참여자 모집부터 단계별로 각자의 역할이 있고, 모든 과정이 중요하지만 거버넌스가 갖는 의미가 크겠죠?

사람들은 유해물질 문제가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아요. 전문가들은 전문가들대로 문제 진단과 대책들을 가지고 있고, 정부도 시민도 각자의 대책들을 가지고 있어요.  이걸 한 자리에서 꺼내놓고 보면 다른 게 보이겠죠. 개별적인 노력들 속에서 공통적인 것들을 깨닫기도 하고, 개별적인 노력으로 안 되는 것들이 얼마나 크게 존재하고 그래서 우리가 어떤 숙제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돼요.

우리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투입되지 않았다는 것들을 알게 되거나 해결을 위한 새로운 노력과 그 노력이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것들을 알게 되기도 하고요. 공론장은 기술적인 문제 진단의 다음 단계에서 수많은 대안과 대책들을 꺼내놓으면서 진짜 대안들이 만들어지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 이번 프로젝트가 시민들과 어떻게 공유되고 공론장에서 누가, 어떤 얘기를 나눌지 궁금증과 기대를 갖고 있어요.

우리가 이 일을 한다는 걸 알리고 좋은 관심을 보이는 분들을 찾아야죠. 바이오모니터링에 함께 하는 많은 시민들 중에는 '시민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시민'이 있을 것이고 또 '시민들에게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전문가'들도 있을 거예요. 정부기관에도 정말 좋은 태도를 가진 친구가 있겠지요. ‘좋은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하자’가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고요.

우리가 토론을 위한 자리에 가보면 자기가 옳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쓰는 분들이 있죠. 그분들은 그렇게 시간을 써도 되지만 다른 분들에게는 좋은 영향은 아닌 것 같아요. 함께하려고 하는 용기 낸 시민들, 그리고 이 일을 궁금해 하는 시민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요.함께 모이는 분들은 자기 생각이 옳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는 사람들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이면 좋겠고요. 하나의 정답을 위해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거든요.

‘여러 가지 노력들이 같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는 대안을 구성하는 데 아주 중요한 질문이자 태도라고 생각해요. 그런 걸 나눌 수 있는 분들을 모으고 그런 태도들로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자리를 마련해 나가야 되겠죠.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그 공간은 또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잖아요.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같이 겪은 사람들이 마음에 들고 이런 노력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걸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다시 일어나서 갈 거라고 생각해요. 변화는 그때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  김신범 부소장님과 얘기를 나누면 우리 사회가 아직 가능성이 있구나, 시민과 함께하는 바이어모니터링 프로젝트가 우리 사회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정말 가능성이 있을까요?

우리에게 실패를 조금만 더 겪을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되게 멋진 걸 만들어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라는 건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원하는 것만큼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 같다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했느냐가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 노력들이 정말로 필요한 곳에 제대로 작동이 되도록 했느냐가 중요한 것 같거든요.

지금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일들은 시민과 연구자, 그리고 정책적인 메시지와 그것을 실현하려고 자원들을 촘촘하게, 우리가 해낼 수 있을 만큼의 가능성 있는 영역들에서 끌어 모을 수 있는 일들이라고 생각을 해요. 우리가 당위성과 책임감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 연구소가 그런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생겼기 때문에 변화는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처음부터 성공적인 길로 진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그 실패를 얼마나 잘 견뎌내느냐가 이번 일의 관건이 될 거예요.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 실망하는 사람들을 지켜내기 위한 방법은 뭘까, 우리는 어디에서 실망을 하게 될까 하는 이야기들이 되게 중요하겠죠.

 

🔖  이런 이야기를 연구자들과도 많이 나누시겠네요?

네. 저는 연구자들에게 얘기해요. 생각보다 우리가 해석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고, 무언가를 하겠다고 얘기했지만 뾰족한 수가 등장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정말 이게 맞나하는 의구심이 생길 때도 있을 거라고. 그렇지만 어느 정도 정리해서 확실한 것만 얘기하려고 하지 말고 모두 꺼내놓고 시민들과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해내고 싶은 욕심으로 앞으로만 치고 나가면 우리의 위험은 커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나누고 있죠.


🔖  연구를 열심히 한다고 결과가 예상대로 나오는 게 아닐 테고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저는 그게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해요. 선택은 당사자들이 하는 거잖아요. 시민들에게 상황과 여러 가지 옵션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우리 뭘 해 볼까요’ 제안하고 선택은 시민에게 맡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손님처럼 와서 채혈하고 궁금해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방법을 선택하고 그 결과로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확인하고, 원하는 결과가 아니라면 다른 선택을 하는데 주체로서 시민들이 성장할 수 있다면 저는 이 사업의 목적을 달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우리 몸이 오염되고 있다는 걸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잖아요. ‘생각보다 더 쉽게 바꿀 수 있네요. 그래도 할 수 있는 게 좀 있네요’ 라는 이야기를 시민들 스스로가 꺼낼 수 그런 경험들을 공유하는 게 이 사업의 핵심 아닐까 해요. 가장 좋은 건 ‘우리가 할 수 있네’라는 경험이에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 있는 것에는 누군가가 더 해 볼 수 있게 길을 열어주는 것 같아요.


“상식을 만드는 건 원칙을 만드는 것과 연결되어 있거든요.
적어도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화학물질로 지키지는 말자는 거죠.”


🔖  화학물질 문제는 시민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고 실천도 어려워요.

화학물질 문제가 그래요. 가습기 살균제도 그랬고요, 아주 작은 방향이 틀어지면서 가지 않아야 되는 길로 가는 경우들이 있어요. 원칙 없이 그냥 편리함만 생각하는 사람들 머릿속에서 만든 일들이 우리 사회를 위험하게 만들거든요. 저는 이번 프로젝트로 화학물질 문제가 생각보다 해결하기 쉬운 문제라는 걸 많은 시민들이 알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변화,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한 선택이 시민들 손에 달려있고, 시민들의 선택들을 보면서 기업들은 넘지 말아야 되는 선이 있다는 걸 알게 되겠죠.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굳이 그걸 넘어서서 마케팅하려는 기업이 있다면 되게 독창적인 기업이겠지요(웃음).


🔖  이런 이야기들이 향후에 시민 포럼에서 다루어지겠군요.

그렇죠. 바이오모니터링 외에도 많은 경험들이 공유되어야겠죠. 왜 우리가 위험해지고 있고 우리 몸에는 화학물질이 많아지고 있는 걸까, 도대체 어떤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들이 이런 것들을 만들어낸 걸까. 잘 생각해보면 아주 상식적인 경로들이 보이게 되고 시민들이 충분히 개입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제가 유일하게 가진 조바심은 지금 감수성이 살아있고 두려울 때 최대한 노력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는 경험치를 축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마 이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또 이런 것들을 귀찮아하는 시기가 곧 올 거예요. 환경 문제는 관심에서 멀어지면 또 다른 사고가 나요.
사람은 그렇게 지혜로운 존재가 아닌 것 같고 한 번 있었던 위험을 기억하기보다는 잊죠. 개인의 기억보다 사회의 기억은 좀 더 느슨하고 덜 조심하는 것 같고요.


🔖  노동환경건강연구소처럼 연구와 운동을 같이 하는 곳이 많은가요? 

저희 연구소와 운영 방식은 다르지만 우리나라에도 노동자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아주 많은 단체들이 등장했고 연구소들도 있어요. 다만, 화학물질 분야는 연구와 운동이 결합돼 있는 곳이 드물어요. 운동성을 가진 곳들 중에서 실험과 분석을 하는 곳은 우리 연구소가 유일하죠. 자원의 한계 때문에 우리 연구소가 흔하지 않은 연구소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김신범 선생님이 부소장을 맡고 있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1999년 녹색병원과 함께 원진재단 부설기관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그동안 화학물질과 작업장의 유해요인으로부터 노동자들이 병에 걸리지 않도록 연구하였으며, 현재는 노동자 뿐 아니라 시민 안전과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환경유해요인의 진단과 대책 마련을 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화학물질 외에도 중요한 문제들이 너무 많아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다양한 영역으로 관심이 나눠져 있을 수밖에 없어요.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지켜주고 있다는 걸 알면 되는 거잖아요. 우리 연구소에게 필요한 건 '화학물질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있구나' 하는 인정일 뿐이에요. 화학물질문제가 상식적으로가능하고 공유할 수 있는 문제가 되면 아주 많은 사람들의 것이 될 수가 있을 거예요.  


🔖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삶을 위해 개인적으로 하는 실천이나 노력이 있나요?

화학물질에 아주 오랫동안 노출되어 왔고 거기서 생겨날 문제점들로 예상되는 것들도 있지만 저만 지키기 위해서라면 노력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지켜야 될 대상이 생기니까 좀 더 엄격해진 것 같거든요. 아이가 자랄수록 그 엄격성의 기준을 낮추게 될지, 아니면 좀 더 강하게 만들지 저도 궁금해요. 화학물질에 대해 최대한 엄격하게 하는 것 또는 어떤 피해도 가져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개인의 영역에서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사람들에게 피곤해 보이고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의 즐거움을 포기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거든요. 개인의 영역은 오히려 더 혼란스럽죠.

즐거움을 추구하는 건 모두 위험한 것들을 수반해요. 예를 들어 OO이라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기름이 흡수되지 않도록 코팅이 된 포장 박스가 나쁘다는 걸 알면서 그 음식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하고 그대로 두는 건  잘못된 거예요. 저는 화학물질 문제는 그런 선택의 영역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이제 포장 박스가 후지니까 더 좋게 만들자고 얘기해야 하는 거죠. 하나씩 바꾸다 보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오는 건 분명하거든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개인이 해요. 저는 이번 프로젝트가 ‘OO을 많이 먹은 사람들이 위험해’가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잘 나눠서 포장박스 바꾸기 편지 쓰기 운동으로 이어지는데 기여하면 좋겠어요. 그런 것들이 우리가 해야 하는 실천의 영역들 아닐까요.


🔖  마지막으로 프로젝트가 종료되는 3년 후의 모습을 같이 상상해 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알고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이 100명 정도 나타나면 좋겠어요.  3년 뒤에는 유해물질 문제는 정말 유쾌하게 고칠 수 있다고 우리 사회의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이번에는 무슨 실험을 하면 좋을까라고 얘기할 수 있는 멋진 친구들  100명이 모여서 그렇게 웃고 떠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음... 지리산의 작은 마을에 100명이 모여서 이런 얘기를 나누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저도 그 자리에 함께 하기를 바래봅니다.


기획, 기록, 연결로 변화를 만드는 사람과 그 일을 돕고 있는 이경원 작가가 인터뷰하고 정리했습니다.


관련 링크

2022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미래비전 소개 영상

화학안전정책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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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화학물질, 나쁜 것은 당장 멈추자 | 서울신문